반장직까지 내 놓고 조합 가입 문의
[울산현장(2)] 지금 현대차 울산공장은 불법파견 판결로 들썩들썩
2010년 08월 16일 (월) 김상민 선전부장 edit@ilabor.org

“잠시 후 불법파견 대법판결 관련 보고대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비정규직 동지들은 주저하시 마시고 이곳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12일 낮 12시 점심시간에 맞춰 시끄러운 기계소리가 멈추자 울산 현대차 승용1공장 ‘오케이 사이드’에서 누군가 마이크를 잡고 호소했다.

평소 같으면 점심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향했을 시간. 하지만 이날 비정규직 노동자 250여명은 허기를 참고 보고대회 장소로 집결했다. 1공장 주간조 비정규직 전체의 80% 정도가 모인 셈이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은 ‘아직’ 조합원이 아니었지만, 누군가에 이끌려서 오거나 관리자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하청업체 사장을 사용주라고 여겨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대법판결의 의미는 여러분들이 도급이 아닌 불법파견이라는 것이며, 이에 따라 여러분들의 사용주는 정몽구라는 의미입니다”
보고대회에 참가한 민주노총 울산본부 법률사무소 새날 소속 장석대 변호사가 판결의 의미를 설명했다. 노조 박유기 위원장도 참가자들에게 조합 가입을 호소하며, 법률적인 지원 등 금속노조가 모든 힘을 다해 함께하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 12일 낮 12시 현대차울산 1공장에서 열린 현대차 불법파견 대법판결관련 보고대회에 참가한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합원 가입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김상민.

보고대회 시작에 앞서 현대차울산비정규직지회(지회장 이상수) 간부들은 참가자들에게 조합가입 신청서를 나눠줬다. 일부 참가자들은 보고대회가 시작하기 전인데도 이미 내용을 다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조합가입 신청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보고대회가 끝난 후 비정규직지회 간부 손에는 수십 장의 가입신청서가 모였다.

이날 밤 9시에는 1공장 야간조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다음날에는 2공장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보고대회나 간담회가 열렸다. 매번 모일 때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참가율, 노조 가입률 모두 지회 간부들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아까 관리자들이 막는 바람에 XX공장에 못 들어갔었는데, 이따 퇴근 후 저녁 때 공장 밖 모처에 모여 집단으로 조합가입을 하겠다는 연락이 왔으니, 저녁 때 시간 좀 냅시다”
“지회장님, 회사 쪽에 빌붙어 있던 사람이 반장직 그만두고 조합에 가입하겠다는 연락이 왔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회 점검회의에서 과거엔 상상하기 어려웠던 얘기들이 오간다. 6백명 수준이었던 지회 조합원 수는 집단가입운동 1주일 만에 1천2백명으로 배가됐다. 지회는 8월말까지 1차적으로 조직확대사업을 벌인 후 9월부터는 규모에 맞는 조직력을 갖추기 위한 교육사업과 더불어 본격적인 실천에 돌입할 계획이다.

물론 아직 5천8백여명에 달하는 울산공장 내 하청업체 전체 직원 수에 비하면 과반에 못미치는 수준이다. 회사에 찍힐까봐 조합가입을 주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아직 있다. 이 싸움에 임하는 공장별 부서별 온도 차이도 극복해야 할 지점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하나같이 정규직 조합원들의 지지와 협조 없이는 해결이 쉽지 않다.

   
▲ 12일 밤 9시에 열린 1공장 야간조 비정규직 간담회에서 노조 박유기 위원장이 현대차 불법파견 대법판결의 의의에 대해 설명하며, 조합가입을 호소하고 있다. 김상민.

이와 관련해 이상수 현대차울산비정규직지회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다시금 자신감을 얻고 있다”며 “비정규직지회가 튼튼한 조직력을 갖추는 것과 함께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연대가 있다면, 남은 난관도 큰 어려움 없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울산 1공장과 2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보고대회와 간담회가 제대로 성사될 수 있었던 데에는 정규직 대의원들의 지원이 한 몫 하기도 했다.

2005년 거세게 타올랐다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사그라졌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 하지만 이 투쟁은 결국 이번 대법 판결로 이어졌으며, 현재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를 계기로 그간의 패배의식을 떨쳐내고 다시금 불법파견 철폐를 이뤄내는 큰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사내하청 비정규직이 만연한 우리사회 제조업 현실에서, 이 싸움의 승패가 미칠 영향력은 막대하다. 현대차 정규직뿐 아니라, 노조 전체가 이 투쟁에 관심과 역량을 모아야할 시점이다.